강화도조약을 현장에서 읽는 방법

강화에 들어갈 때마다 초지진 앞에서는 발걸음이 느려진다. 바다 건너 땅이 가깝다. 이 좁은 물길로 군함이 들어왔고, 이듬해 강화읍에서 조약이 맺어졌다. 강화도조약을 읽으러 간다면 조약이 체결된 자리보다 그 일이 시작된 해안부터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르다.
배 시간 대신 다리와 이동 동선부터 잡는다
강화도는 섬이지만 지금은 다리로 들어간다. 강화도조약 현장을 보는 일정에 여객선 시간표나 결항 걱정은 필요 없다. 초지대교로 들어가면 초지진을 먼저 보고, 해안의 방어 시설을 거쳐 강화읍 연무당 옛터로 이동하는 순서가 자연스럽다. 초지진과 연무당을 한 동선에 넣으려면 차가 편하다.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지만 두 곳 사이 이동과 대기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걷는 시간이 여행의 중심이라면 강화군이 안내하는 강화나들길 2코스도 있다. 갑곶돈대에서 초지진까지 17km, 안내 소요 시간은 5시간 50분이다. 광성보와 덕진진을 지나므로 강화해협의 방어선을 길게 볼 수 있다. 다만 이 길 전체가 강화도조약의 현장은 아니다. 시간이 반나절뿐이라면 17km를 채우려 애쓰기보다 초지진과 연무당 옛터에 시간을 쓰는 게 낫다.
초지진에서 운요호 사건을 먼저 읽는다
1875년 9월, 일본 군함 운요호는 식수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강화해협에 접근했다.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던 초지진 수비군이 포격하자 일본군은 초지진을 공격했다. 이어 영종도에도 상륙해 살상과 방화를 저질렀다. 현장에서는 ‘조선군이 먼저 쐈다’는 한 문장만 기억하면 사건의 앞뒤가 잘린다. 왜 군함이 수도로 통하는 좁은 해협을 탐색했는지 함께 봐야 한다.
초지진은 크고 화려한 유적이 아니다. 지금 보는 시설 가운데에는 훗날 복원된 부분도 있다. 나는 여기서 성벽 사진보다 물길을 오래 본다. 배가 어느 방향에서 들어와 어디로 더 올라갈 수 있는지를 눈으로 따라가면, 당시 수비군이 이곳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이유가 선명해진다. 물때에 따라 갯벌과 물의 폭이 달라 보여도 1875년의 해안선과 지금 풍경을 그대로 겹쳐 읽지는 않는 편이 좋다.
광성보와 덕진진을 들른다면 사건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두 곳은 강화해협 방어를 이해하는 데 좋지만, 초지진에서 벌어진 운요호 사건과 같은 전투 현장은 아니다. 여러 포대의 역사를 한 사건으로 묶어 설명하면 강화도조약으로 이어진 순서가 흐려진다.
연무당 옛터에서 조약의 문장을 확인한다
초지진을 본 뒤 강화읍으로 가면 강화산성 서문 건너편에 연무당 옛터가 있다. 이곳에서 1876년 2월 26일 조선의 신헌과 일본의 구로다 기요타카가 조일수호조규에 서명했다. 강화도조약은 이 조약을 부르는 익숙한 이름이다. 연무당 건물을 구경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허전할 수 있다. 옛터의 의미는 남아 있는 건물보다, 무력 시위가 외교 문서로 바뀐 장소라는 데 있다.
조약은 12개 조항이다. 현장에서 전부 외우려 하기보다 네 군데를 읽으면 윤곽이 잡힌다. 제1조는 조선이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적었다. 말만 보면 대등해 보인다. 그런데 항구를 열도록 한 조항, 일본 선박의 조선 연안 측량을 허용한 제7조,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범죄를 일본 관리가 재판하도록 한 제10조를 이어 읽으면 실제 권한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드러난다. 특히 해안 측량은 바닷길을 아는 일이 군사와 통상 양쪽에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며 읽을 대목이다.
항구 이름도 시기를 나눠 기억하는 게 정확하다. 부산은 1876년, 원산은 1880년, 인천은 1883년에 개항했다. 세 항구가 조약 당일 한꺼번에 열린 것은 아니다. 관세 문제 역시 조약 본문에 관세 규정이 빠진 점과 뒤이은 통상 규칙을 함께 봐야 한다. ‘강화도조약 한 장에 무관세라고 쓰였다’고 외우면 실제 교섭 과정을 놓친다.
이 섬 여행이 잘 맞는 사람
초지진에서 연무당 옛터까지 따라가면 강화도조약이 단순한 개항 날짜가 아니라는 게 보인다. 군함의 접근, 해협의 포격, 영종도 공격, 군함을 동반한 교섭, 조약 체결이 차례로 이어졌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현장 지형과 나란히 놓고 읽으면, ‘평등’이라는 조약의 첫 문장과 뒤따르는 조항 사이의 거리도 보인다.
사진 명소를 빠르게 여러 곳 찍는 여행을 원한다면 연무당 옛터는 싱거울 수 있다. 반대로 바다를 보고 문서의 문장을 다시 읽는 시간이 좋은 사람에게는 이 동선이 오래 남는다. 강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도 거창한 유물이 아니라 초지진 앞의 좁은 물길이다. 조약문 속 해안 측량권이라는 말이 그 앞에서는 훨씬 구체적으로 들린다.
